Wednesday, May 30, 2007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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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

11. ‘My Joy is In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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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8월 – 광복절을 기념하며....
- Commemorating the Independence Day - August 2001
- 이사야 62장 1~5절의 ‘헵시바’ 와 ‘뿔라’ 에 대한 소고
- ‘Hephzibah’ and ‘Beulah’ in Isaiah 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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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2장 1~5절
1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2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쀼ㄹ라(뿔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바가 될 것임이라 5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세계의 화약고'라는 별명이 붙은 중동지역은, 해당국가들 뿐만이 아니고 온 세계의 관심과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중동 지역의 국지전과는 이해관계가 없는 나라들도 '원유 수입과 그에 따른 세계 경제의 여파'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중동지역의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됩니다. 중동지역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충돌하는 국가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자치지구(P.N.A)와의 대립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자치지구(P.N.A) 모두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자기들이 조상 때부터 물려받은 땅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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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의 주장 모두가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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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과 광야의 생활을 거쳐 가나안 땅에 입성 한 이후 - 사사시대를 거쳐 - 통일 왕국과 분열 왕국시기를 보내고 - 바벨론 포로기와 더불어 - 귀향 민을 통한 유대종교의 재확립, 알렉산더와 그 후예들에 의한 헬라의 식민지가 되었고 - 후에는 로마의 식민지를 거칠 때까지 - 요단강의 서안지구, 지금의 팔레스타인자치지구는 ‘이스라엘의 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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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70년 이후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로마의 디도 장군 지휘아래 짓밟히고, 이스라엘인들은 다시금 로마의 통치권 내의 영역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흩어진 자리에는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이 모여 들어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지금의 팔레스타인자치지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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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스라엘이 '시온주의 깃발아래'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고, 1948년 연합군 군정 통치 밑에서 지금의 이스라엘을 약 2500여년 만에 건국하였습니다. 드디어 2500여년 만에 고난과 굴욕의 역사 위에 이스라엘 국기를 꽂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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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이스라엘이 탄생한 것은 1948년 이후입니다. 그들이 사용하는 국기 가운데 있는 별 모양의 상징은 - 흰 바탕에 - ‘다윗의 별’이라 하여 그 옛날 다윗왕의 영광을 재건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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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영광을 실현시키자는 과업 아래 현재의 이스라엘이 1948년 이후 수립되고, 영토가 확정될 때 그 땅에는 2000년 가까이 살던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옛날 신명기나 여호수아서에 나타난 것처럼 “호흡이 있는 것은 진멸하라”는 명령만을 따를 수가 없는 것이 근대에 이어 현대의 전쟁 윤리인 동시에 국제사회의 윤리입니다. 1948년 새로운 이스라엘 ‐ 다윗의 영광을 꿈꾸며 국기조차 다윗의 별을 내걸었지만, 그들이 세계 각국에서 고국 땅을 찾아 왔을 때는 이미 그곳을 점령하고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땅에 대한 소유권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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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자치지구의 사람들도 할 말은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이건, 주권 잃고 국민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그 땅에는 자연히 다른 사람들이 살게 됩니다. 그들도 그렇게 2000년 가까이 그곳에 정착하여 자손 대대로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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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들이 옛날의 이스라엘 자손이고 땅 임자니까, 너희들은 다른 곳으로 가라“고 내 쫓으려고 합니다. 10, 20년도 아니고 2000년 가까이 동안 살던 곳인데...그 땅의 주인은 누구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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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를 읽다 보면 눈에 가장 많이 띄는 단어가 자손과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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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2;1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50:24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레 20:24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너희에게 주어 유업을 삼게 하리라.
출 23:30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신 1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 곧 네 소유가 된 기업의 땅에서 조상이 정한 네 이웃의 경계를 옮기지 말지니라.
신 28:11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수 1:4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너희의 영토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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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성경의 수많은 곳에서 땅에 대한 약속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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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자치지구 사람들에게 있어서 땅은 투자가치나 재산으로서의 땅의 개념이 아닙니다. 그들의 선조들이 살았고, 뼈를 묻고 자신들도 묻혀야 할 곳, 그리고 자손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삶의 근본이며 뿌리’로서의 ‘땅에 대한 개념’입니다. 현대 세계에서는 전쟁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100년, 200년 전의 땅의 개념들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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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시 그 중에 속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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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방과 36년간의 일본에 의한 식민지시대, 1945년 해방과 곧 이어 남북분단, 6.25전쟁 때에는 이 땅의 수많은 청춘들, 혹은 애국지사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거나 뒤로 한 채 오로지 조국의 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불살랐습니다. 자신들의 삶뿐만이 아니고 선조와 후손의 근본을 지키기 위해서 있는 논, 밭 임야....목숨까지도 바치면서도 우리가 발 디디고 서 있는 이 땅을 지켜내었습니다. 그 대가가 국가에서 수여하는 훈장, 아니면 묘비의 이름 석자,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이름 없는 어느 산골, 어느 벌판, 혹은 동남아의 어느 곳에서 죽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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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들의 후손 중 많은 사람들이 생활고에 시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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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즉 이 땅을 지켜내기 위해서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을 내어주고, 자신의 몸뚱이까지 불사를 때는 가정과 국가 모두에게 충성(충실)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지키기 위해 애태웠던 조국은 해방을 맞고, 또는 전쟁은 멎었지만 그들에게 현실적으로 부딪친 것은 ‘삶의 문제’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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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었으니 남아 있는 재산이 없는 게 뻔합니다.
이 분들에게는 조국의 영광 뒤에 묻혀진 개인의 희생뿐만이 아니고 ‘자손의 고생까지’가 이분들에게 돌아온 몫이지만, 그분들이 죽을 때는 이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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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적응 잘하는 사람들은 일본 식민지 아래서는 일본에 아부하고, 미군정시대 때는 미군정에 잘 보이고, 48년 이후에는 권력의 주된 세력인 자유당과 결탁했습니다. 덕분에 이들은 재산을 빼앗긴 것이 아니고 오히려 늘렸습니다. 그들의 자손들은 지혜로운(?) 조상을 둔 덕분에(!) 세상 편하게 잘 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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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이 무엇이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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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류는 자신의 목숨도 모자라서 부모, 자식들의 목숨까지도 버려가며 이 땅을 지키려고 발버둥쳤고, 한 부류는 세상 돌아가는 것을 남의 나라 일처럼 구경만 했고, 한 부류는 기득권이 바뀔 때 마다 재빠르게 처신해서 자손들까지도 대대손손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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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민족의 근본으로 보느냐. 아니면 재산 가치로 보느냐에 따른 각자의 인생 행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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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정신대 할머니들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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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할머니는 16살에 일본순사와 그 사람들의 앞잡이가 아버지를 징용으로 끌고 가기 위해 잡으러 오자. 어머니가 아버지는 피신시키고 16살 먹은 자신을 가리켜 “남편 대신 데려가면 안 되겠느냐” 해서 아버지 대신 “흰 밥에 고무신 사 준다" 는 ‘일본 앞잡이들의 뀜’에 빠져 정신대에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 어머니는 8명의 자녀들과 살기위해 남편을 피신시키고 남편대신 제일 큰 딸을 지목해야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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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도록 가난한 당시의 농촌 현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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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80살이 넘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이 할머니는 아직도 당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보고 싶지 않다는 '애증'이 섞인 말을 토해냅니다. 조선반도에서 대개가 15-20살 정도의 꽃다운 처녀가 수천 명, 혹은 수만 명이 전쟁을 하는 군인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서(?) 강제로 전쟁터로 끌려가 서 희생물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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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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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조국 땅으로 돌아오는 귀국선에는 갖가지 사연을 가슴에 품은 온갖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현해탄의 푸른 바다 위에서도 조국의 땅, 가족의 품을 그리워하며 배 멀미를 견뎌냈습니다. 벌거벗은 산등허리, 초라한 초가지붕, 배고파하는 어린 자식이나 동생들..... 몇 년 만에 다시 밟는 그리운 조국 땅이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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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남자들은 징용으로 끌려가서 노역을 하다가 다쳤거나 전쟁터에서 다리를 잃었어도 개의치 않고 조국의 품. 가족의 환대를 받으며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지만 여자들은 달랐습니다. 이미 군인들에게 짓밟힐 만큼 짓밟혀서 망신창이가 된 몸, 유교적 사상에 물든 조선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딸이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뭣 때문에는 따질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현실적으로 불쌍하지만, 남이 알면 집안 망신시킬 딸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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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전쟁터에서 죽어 오지나 않았으면’ 가슴에라도 묻고 살아가겠지만, 눈앞에 나타난 딸은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존재로 남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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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선 뱃머리에서 그렇게 그리며 찾은 고향의 땅은 이제는 자신을 버리는 ‘쓰디 쓴 소태의 땅’으로 변한 게 정신대 할머니들이 겪은 상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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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도 이런 이야기고 남의 일이니까 편하지, 여러분 집안의 친 할머니 혹은 이모, 고모라면 이웃들이 알까 봐 쉿-쉿 했을 것입니다. 조국 때문에 인생의 꿈이 무너진 것도 한이 맺히는데 고향과 가족한테도 또 한번 버림을 받아야 했던 이들이 정신대 할머니들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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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을 지키지 못해
이 땅의 처녀들이
남의 땅에서 짓밟히고
다시금 이 땅에 돌아왔건만,
이 땅은 다시금 그녀들을 외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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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분들은 70-90살의 연령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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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으로도 그분들에 대한 보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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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전쟁의 주범이었던 대동아 전쟁에서 희생당해야만 했던 위안부들의 존재조차도 부인하려는 일본의 교과서 문제나 고이즈미 총리(2007년 현재는 아베 신조 총리)의 말이나 행동은 한국의 정신대 할머니들뿐이 아니고, 중국, 필리핀등지에서 아직도 살아서 지난날의 오욕의 역사를 말해주는 정신대 할머니들에게는 그분들의 흔적을 아무 곳에서도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파렴치한 행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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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정치인들이 지난시절에 저질러졌던 일본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희생당한 전쟁 위안부(정신대 할머니들)에게 지금이라도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가차원에서 사과하는 것이 이분들한테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상인데도, 이것마저 외면하는 통에 마지막 죽은 순간까지도 이분들의 ‘한 많은 삶’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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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면 '이태원'도 이렇게 시작된 장소요, 지명입니다.
다만 시대가 임진왜란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다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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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에는 ‘운종사’라는 여승만이 수도하는 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거침없이 한양까지 올라와 용산에 주둔하고 머물면서 ‘운종사의 비구니’들을 마구 겁탈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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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아녀자들은 겁탈을 당한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갖은 방법으로 낙태를 시키거나, 낳은 애를 남들 모르게 버리거나, 그것도 아니면 갓 낳은 애를 엎어서라도 죽였지만, 생명을 중시하는 비구니들은 그러지도 못하고 아이를 낳아서 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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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이 서울에서 도망가자 다시 서울로 돌아온 조정은 왜군들에게 겁탈을 당해서 낳은 아이들 문제로 고심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조정에서는 ‘운종사’ 여승들을 포함해 왜적의 아이를 낳은 부녀자들을 벌하지 않기로 하고, 이곳에 보육원을 지어 아이들을 기르게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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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 사람‘들은 이 비구니들이 기거하는 곳을, 다를 이(異), 애밸 태(胎), 사원 원(院)을 써서 이태원’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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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이태원‘ 이라는 지명의 시작은 ’이국 놈들의 애를 밴 (여승들의)사원‘이라는 기막힌(?) 어원에서부터 시작한 셈입니다. 이태원이라는 지명자체가 여인들에게 ‘크나큰 한을 남겨준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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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효종 때 이곳에 배 밭이 들어서고, 배나무를 많이 재배하는 곳에 여행자의 숙소인 ‘역원’을 지었다고 해서 지금의 배리(梨), 클 태(泰), 사원 원(院)‘의 뜻을 가진 이태원’이라는 이름으로 한자표기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배리(梨), 클 태(泰), 사원 원(院)을 쓰는 ‘이태원’은 중간에 바뀐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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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역사가 무엇이 건대...
인간의 역사는 그 땅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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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2:1-5 이스라엘의 역사를 땅에 비유하고 ‘그 땅을 위로 해 줌’으로써 실의에 찬 귀향 민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메시지의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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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586년 바벨론에게 주권을 빼앗기고 왕과 이스라엘의 영향력 있던 지도자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538년 바벨론의 주권이 페르시아에게 넘어가자 537년 이스라엘의 포로들 일부가 귀국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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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귀향 민들은 새로운 성전을 짓기 시작했지만 (에스라 5.14‐16) 웬일인지 성전 짓는 일은 중단 됐습니다. 그리고 학개서를 보면 520년경에 성전 짓는 것이 재개됩니다(학개 1.12‐14) 결국 귀향 민들에 의해 B.C 537또는536년부터 짓기 시작한 성전을 B.C 515년에 봉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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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537년과 515년 사이 근 20년간의 상황이 성경에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귀향 민들은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운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참고 느헤미야 5장) 이런 귀향 민들은 격려하고 위안해주고 지켜줄 그 무엇이 필요했습니다. 예언자는 사 62:1-5의 구원을 선포함으로써 이 때의 상황 속에서 귀향 민들을 격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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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 62:1-5절의 위로의 내용에는 팔레스타인 땅에 귀환한 귀향 민 뿐 아니고 아직도 외국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귀환을 독려하는 내용을 기본으로 하는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이 구원 약속은 귀향 민 뿐 아니고 이스라엘 전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우리나라 경우에도 8.15해방과 6.25전쟁, 60년 초의 정치적 혼란으로 이어지던 시대에 '희망의 나라' '고향의 봄' 등은 이러한 성격을 뛴 대중을 위한 노래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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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도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또는 6.25전쟁 당시 많은 사람들이 조국의 땅을 투자의 가치가 아니고 민족의 삶의 근본으로 보고, 이 땅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은 내주었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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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땅은 철저히 야훼,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레25:23, 신19:14. 왕상21:3, 특히 레25;23참고)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부부관계 또는 부자관계로 묘사 할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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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 사 62:1-5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그 땅과 결혼하는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남의 나라에 주권을 빼앗기고 짓밟힌 것을 4절 '독신녀' '버림받은 여자 ', '버림 받은 채로 내버려 둔 여인'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과거의 이스라엘입니다. 현재의 귀향한 이스라엘에게는 그 땅을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 –햅시바" 또는 "결혼한 여자-뿔라'"라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호세아 1장 참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히 사람에게 뿐이 아니고 침묵하는 땅까지도 포용하시겠다는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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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헵시바'와 '뿔라'는 537년 귀향한 귀향 민들에게는 진정으로 자기들이 발붙이고 살아야 할 그 땅을 야훼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시고, 사랑하겠다는 뜻이고, 아직도 타국에 남아서 귀환하기를 주저하는 이스라엘에게는 “과거의 재난은 더 이상 없다. 시온이 짓밟히는 일은 이제는 없을 것이고, 오히려 어둠에 빛나는 횃불 같이 예루살렘은 세계만방에 찬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도록 내가 돌봐주고 이끌어 줄 것이니, 너희는 귀환하는 것을 망설이고 주저하지 말라”(사 62:11)는 의미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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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은 선포하는 말에 있다기 보다는, 포로기 이후 깊은 절망에 휩싸여 공동의 목표와 사상이 완전히 결여 된 시대에 새롭게 약속을 선포하였다는 것에 더 큰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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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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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백성이 보기에 포로기가 끝나도 구원시대는 동터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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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에 기록된(40장 이하) 구원 약속은 분명히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앞으로 다가올 구원의 시대를 묘사한 세부 내용들의 더더욱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고난 중에 울부짖었더니 야훼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었다. 그 구원을 베푸는 과정에서 비로소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살아서 활동하신다는 것을 인지하고 인내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장 23절-25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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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1:1-3절이 누가복음 4:16절에 다시 재해석 되어 선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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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이사야서의 선포가 예언자의 시대에는 성취되지 않았더라도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비로소 성취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설교 속에서 이스라엘 역사를 지겨울 정도로 반복하여 공부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겪었던 고난의 역사를 통해 그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배우는데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생명의 하나님이 말씀으로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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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역동성의 원리와 역리성의 원리 가운데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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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오늘의 본문이 '재해석'의 역사를 통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까지 영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왕같이 존귀한 제사장, 거룩한 나라, 선택 받은 백성이라는 말씀을(출애굽기19:6과 베드로전서 2:9-10비교) 여러분 한명 한 명한테 적용 될 때는 오늘의 본문 이사야 62:1-5의 말씀 중 “헵시바” 는 바로 당신에게 “나의 기쁨이 너에게 있다” 로 해석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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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여러분은 선택 받은 백성 입니다. 자부심을 갖고 그 나라의 백성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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