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ly 16, 2007

지 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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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 혜 (생명력, 자연, 당뇨, 지혜자)
8. Wisdom (Life, Nature, Diabetes, Wise 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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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 9월
- September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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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의 '지혜자의 역할'에 대하여....
_ 이스라엘 현자들의 깨달음, 지혜의 모음집-잠언(서)
- About the ‘role of wise person’ as an agent of God
- The Book of Proverbs - A collection of Israelite wise persons’ awakening and wis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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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1장1~6절
1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3 지혜롭게, 의롭게, 공평하게, 정직하게 행할 일에 대하여 훈계를 받게 하며 4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5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 6 잠언과 비유와 지혜 있는 자의 말과 그 오묘한 말을 깨달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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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로 지혜를 '호크마'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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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크마'의 원래의 개념은 인간끼리, 혹은 사물과의 적극적인 접촉을 통하여 습득되어진 경험과 기술이 기본 개념입니다. 그 까닭에 잠언(서)에서 언급하는 지혜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한 행위의 열매로 표현될 때가 많습니다(잠1;31 참고).
이 지혜는 근본적으로 악을 행치 않고, 오히려 모든 악행을 지배하거나 통치할 때 '지혜롭다'고 합니다. 또 잠언(서)에서 지혜라는 말은 숙련됨 이외에 실제적인 생활경험과 심오한 생활문제에 대한 통찰, 그리고 교활함과 책략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인식까지도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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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탄생된 ‘호크마’는 여러 종류의 지혜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호크마'는 구약에서 140번 가량 등장하는데 잠언에만 39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사용된 '호크마'의 예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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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첫째 ; 전쟁에서의 모략 (사10;13)
ㆍ둘째 ; 기술이나 기술적인 직업에서의 특정실력 (출28;3. 31;3. 35;35. 36;1-2)
ㆍ셋째 ; 행정적인 처리에서의 지혜 (신34;9, 사29;14, 렘49;7, 삼하14;20)
ㆍ넷째 ; 건전한 판단과 의식을 가리키는 지혜 (삼하20;22, 렘9;22, 사47;10, 단1;4)
ㆍ다섯째 ; 종교적인 행위•일들에 있어서의 신중함 (신4;6, 시37:30. 90;12, 사33;6)
등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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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에 나오는 '지혜'는 처음에는 세속적인 형태를 띠다가 점차 신학화 되어 마침내는 이스라엘의 신앙의 형태로 되었습니다. 잠언1:7과 9;10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 즉 신앙과 종교가 인식이나 지혜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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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서)에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사용됨으로써 누구에게든지 신앙과 지혜가 같은 뜻으로 들리게 됩니다. 1장부터 9장 사이에는 '세속적이고 인류 보편적인 지혜’와 ‘야훼 신앙’을 통합 시키고 있습니다. 이 구절들에는 '지혜'와 '통찰' 그리고 '현명함'이나 '어리석음' 같은 전통적인 지혜 용어들과 '정의', '올바름', '하나님에 대한 경외' 같은 종교적인 개념들이 뒤섞여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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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잠언에서는 '지혜'와 더불어 가르침, 즉 교육의 중요한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다른 말 '훈계'는 히브리어 '무사르'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공동체는 지혜의 본질을 사람으로 하여금 명철하게 가장 선한 것, 즉 여호와를 가르쳐 주는 것에 있습니다. 때문에 지혜를 키워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계로 교육시킬 것을 잠언서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훈계는 아버지나 선생님이 아들이나 학생을 야단칠 때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잠 22;15, 23;12-14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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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금언들 밑바닥에는 하나의 사상이 흐르고 있는데, 이 사상은 인간의 모든 삶 속에는 하나의 질서•법칙이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동 여하에 따라 그의 형편이 결정되며, 어느 면에서 보면 그것이 신의 보응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정직한 사람은 행복을 얻을 것이며, 나쁜 짓 하는 사람은 불행하게 되며, 야훼 하나님이 싫어하는 말과 행동은 반드시 인간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그것을 피해야 한다는 사상이 짙게 깔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잠 12;21, 13;6, 24;16, 25;8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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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의 특징’은 그 근거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인간의 경험에 의존’하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이스라엘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후손들에게 각 개인이 취할 태도와 공동체내의 지식전수를 통해 지혜를 전달해 줄 목적으로 잠언이 기록되어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혜는 옳은 행동을 통하여 정직과 의와 성실로 표현 된다고 지혜 자들은 후손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지혜는 지혜 그 자체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이 이스라엘 현자들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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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있는 사람은 인간이 도덕적으로 바른 행동을 할 힘을 지니고 있다고 가르치며, 오직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맡겨진 삶에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이 기록 된 그 옛날에는 하나님과 인간만을 묶어서 인간으로서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여 사는 것을 지혜롭게 생각했지만, 자연을 잃어버린 현대에 와서는 이 범위에 '자연'이 추가 됩니다.
현재와 미래의 기독교는 <하나님 앞에 선 존재><이웃 앞에 선 존재><자연 앞에 선 존재로서> 인간은 자기의 과제를 짊어지고, 그의 생을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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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이웃 앞에서> <자연 앞에서> 책임 있는 존재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책임을 지고 하나님•이웃•자연 앞에 서 있는 <하나님의 대리인>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지혜는 인간의 존재를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의 역할, 곧 하나님-인간-자연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게합니다. “하나님 없이, 그의 형제 없이는 인간은 지구를 잃게 됩니다.”―이 말속에는 지혜가 하나님과 인간과 자연을 한 묶음으로 묶어주는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셋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자리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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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오염과 자연의 피해는 뜻밖의 재난을 가져 다 줍니다.
TV뉴스에서 전남 여수부근의 바닷물에 적조현상이, 낙동강하구에는 녹조 현상이 심하게 일어나 생태계에 큰 위협을 준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녹조나 적조현상은 80년대부터 보고 된 자연변화 현상입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2001년에는 녹조나 적조현상이 무서운 속도로 넓이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 만큼 우리에게 먹을 것, 마실 것, 숨쉴 수 있는 혜택을 준 자연이 급속도로 병들어 가고 있음을 경고하는 현상이기도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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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청정해역에서 바다농사를 하시는 분들은 뜻하지 않은 재난상의 피해를 당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어도 다른 지역에 사는 대다수의 국민들은 녹조와 적조에 대한 지식만 늘어났지, 환경오염을 방지하려는 특별한 움직임이나 결단이 없습니다.
자연환경에 관심이 있는 소수만이 또는 특정단체들만이 환경오염을 외치고 있을 뿐, 국민들 대부분은 하루아침에 재산상의 피해를 입어 울상인 어민의 얼굴을 TV에서 보면서도 남의 일 뿐이라는 안이한 생각 속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집 수도꼭지에는 정수된 수돗물 잘나오고, 식탁에 오르는 쌀(밥). 빵. 야채. 과일, 등의 먹을거리들은 슈퍼에 가면 가득히 쌓여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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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공기가 오염 된다’고 매스컴에서 하루가 멀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일반국민들이 숨쉬는데 별 지장이 없고,...이렇듯 오늘을 살아가는데 별 불편함을 못 느끼다 보니 의, 식, 주 생활에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방세제, 목욕세제 따위의 각종 생활용품들이 사용 후에는 오수나 폐수로 방류되어 훗날 암담한 결과로 다가올 것은 생각하지 않고 사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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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땅에 비해 인구가 많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게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이러한 특성상 자연 훼손과 환경오염은 불가피 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보다 인구 밀도가 훨씬 낮고, 자연훼손이 훨씬 덜한 국가들에서도 '환경오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대책을 강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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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환경 단체에서 머리 감을 때 샴푸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빨래비누로 감고 마지막 헹구는 물에 식초 몇 방울 떨어뜨리는 방법을 보급하려고 애쓴 적이 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비누로 머리를 감는 것보다는 질 좋은 샴푸로 감고 향긋한 린스로 마무리를 한 것이 머리에서 풍기는 냄새도 좋고 머리결도 훨씬 부드럽습니다. 환경단체에서 주장하는 ‘2주-1달 지나면 머리 결이 부드러워 진다’는 말은 적절치 않고, 1-2년을 사용해도 머릿결에 뻣뻣함이 남아 있습니다(내 경험을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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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비누를 사용해서 머리를 감은 분들의 머리카락이 샴푸, 린스 사용한 분들보다 나이 들어서도 굉장히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한 가지는 비누로 머리 감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더라도 내일의 후손을 위해 개개인이 행동에 옮길 때만이 비로소 자연은 유지되거나 살아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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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대다수의 국민들이 환경오염과 그 피해를 남을 일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자연이 주는 혜택 앞에서 교만했던 사람들이 자연이 주는 재해 앞에서는 원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앞으로는 더욱 번번해 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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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도 '개발과 발전'만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환상아래 개발만을 향해 돌진해 왔지만, 개발의 역효과로 환경오염이 나타나자 70-80년대부터는 개발된 자연, 훼손된 자연을 복원 시키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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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써 도시 내의 하천은 생활하수로 냄새나고, 썩어가고, 모기나 유해 해충들이 서식처 정도로만 인식하다가 늘어나는 자동차를 위해 하천부지를 복개공사 한 뒤에 도로나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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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천을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복개시키면서 그 기능을 상실한 하천은 도로와 주차장만을 제공한 것이 아니고 도시 생태계에 역기능까지 제공했습니다. 정확하게 어떤 것이 생태계에 대한 역기능인지는 모르지만, 하천부지를 복개할 당시에는 생각지 못했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자 복개했던 도로나 주차공간을 뜯고 원래대로 복원(복구)시키는 공사가 여러 곳에 생겨나고 있습니다(청계천 복원 사업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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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내의 하천 물에서 냄새나고, 썩어가고, 모기가 생긴다고 하여도, 장기간을 보면 하천을 복개시킴으로 해서 얻는 이득보다는 잃는 손실이 커져서 원래대로 복원(복구) 시키는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많은 돈과 인력과 시간을 투자해서 만들었던 거대한 댐들조차도 파괴시켜 강물 원래의 흐름을 되찾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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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여름에 경기 수도권 지역, 그 중에서도 안양지역에 엄청난 홍수피해를 입었습니다. 아직까지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당시 안양천 부근에 사는 시민들의 피해가 엄청 컸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도시개발계획안’에 따라서 안양천에 둑을 쌓아 하천부지를 인위적으로 좁혔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가뭄과 홍수가 반복되는 지형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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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쓸모없이 넓게 방치 된다’ 싶은 하천변의 ‘넓은 빈 공지’(공휴지)를 아깝게 생각해서 둑을 쌓아 하천부지를 좁힌 후에 나머지 부지를 해당 시에서 도시계획에 인위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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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정상의 오류는 한반도특유의 자연환경을 모르고 벌인 도시개발의 후유증입니다. 평소에는 버려진 땅으로만 생각되던 하천부지에 둑을 쌓아 정비하면 여분의 땅이 생겨나 도시계획에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하는 것 같지만, 몇 십 년 만의 큰 홍수 때 안양천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참고로 물이 가장 많을 때와 적게 흐를 때의 유량을 비교하면 한강은 1;590, 낙동강 1:360, 센느강 1;8-10 라인강 1;30 정도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수자원의 조절이 쉽지 않은 자연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때문에 한반도의 자연환경을 무시하고 너무 외국의 정책만을 모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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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환경오염은 많은 질병을 가져왔고, 그 치료책으로 인위적인 치료약에 의존할 것을 요구합니다. 선진국에서는 훨씬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대체의학'이라고 불리던 부분이 서서히 부각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든 인위적인 치료약들 대부분은 장기간 복용을 하게 되면 생각지 않던 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곤 합니다(그것이 항생제가 아니더라도). 근래에 와서는 그 동안 무시 했던 '민간요법'이나 '생식위주의 식생활‘이나 ’자연 요법' 따위의 '대체의학'들이 다시 의학계에서 검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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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개개인의 몸은 그 특성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천편일률적인 처방약에 의존하다 보면 낫는 사람은 낫고, 낫지 않는 사람은 낫지 않습니다. 무서운 암도 마찬가집니다. 환자에게 암세포가 몸 전체에 같은 비율로 퍼졌는데도 같은 처방으로 어떤 환자는 살아나고 어떤 환자는 죽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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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요법이나 식이요법도 마찬가집니다.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퇴원한 환자 중에서도 각종 야채즙위주의 식이요법이나 다른 민간요법으로 소생되는 사람은 소생되고 죽는 사람은 죽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인간의 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력'이나 자연이 가지고 있는 '자정효과‘나 ’자생효과'를 무시하는 쪽에서 의술을 펼쳐 왔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그 세포자체가 생명력이 있고, 자연도 그 안에 놀라운 생명력과, 자정효과가 있습니다. 현대의학에서도 이 부분에 다시금 눈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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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도 1977년 RH-787로 음독자살 직후부터 I형 당뇨병(인슐린 의존형, 당시 내 나이 17살)뿐만이 아니고 몸 안의 각종 내장기관이 그 기능을 상실 하다시피 한 곳이 많았습니다. 당뇨병만 하더라도 다른 당뇨병환자에 비해 고혈당과 저혈당의 기복이 매우 심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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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년부터 95년까지 발 때문에 너무 심한 고생을 했습니다. 특별히 격렬한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신중하게 고른 신발을 신고 걷기만 하는데도 산책에 열중하다 보면 발가락이나 뒤꿈치에 물집이 잡히고,...그 다음날 다시 산책하면 어제생긴 물집이 터지고, 물집이 터진 상처가 커지고... 발 때문에 고생하던 4년 동안은 소독약, 붕대, 항생제연고, 항생제주사액과 주사기를 상처부위의 국부주사를 위해 어느 곳에나 가지고 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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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는 발의 상처 때문에 남의 집을 방문하거나 출석하는 교회의 슬리퍼 뒷부분에 항상 피를 묻어도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때 생각해 낸 것이 뒤꿈치를 들고 발 앞부분만으로 걷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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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처음에는 1-2분 걷기도 힘듭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집안에서나, 가까운 거리는 뒤꿈치를 들고 다녔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걷는 보통의 거리는 30분 안팎의 거리입니다. 5분 정도 걸고, 1-2분 쉬고, 다시 걷고, 이런 반복된 훈련 덕분에 다리 근육도 쉽게 풀리지 않고(?) 4년을 고생하던 발의 상처들이 몇 개월 지나면서 아물었습니다. 그 당시 오른쪽 엄지발톱은 5번 빠졌는데도 정상적으로 나오고 왼쪽 엄지발가락 발톱은 8-10번 정도 빠졌는데 지금은 기형적으로 조그맣고 비뚤어지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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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도 신발이 조금만 불편한 것을 신고 산책을 오래 하면 물집 잡히고, 왼쪽 발톱 쉽게 빠지려 하고, 이럴 때면 발뒤꿈치 들고 집안에서 음악 틀어 놓고 가볍게 춤추거나, 20-30분 정도 뒤꿈치를 들고 하는 걸음걸이를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도 2005년 10월까지, 10월에 넘어진 후 발 때문에 2007년 5월인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는 중입니다.) 내 오랜 경험상 자신의 발에 편한 신발을 발견하시면 한꺼번에 몇 개씩 사 두는 게 좋다는 말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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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슐린을 투여한지 18-20년 정도 되니까 이가(치아) 너무 시린 증세로 고생 했었습니다. 특히 겨울철 영하 5도 이하의 날씨에, 그것도 저녁이나 밤에 산책을 끝내고 실내에 들어오면 이가 너무 시려서 30분 이상을 고생해야만 했습니다. 이때부터 보통 아침 기온이 15도 이하가 되는 10월 중순에서-다음해 4월까지는 입마개(마스크)사용이 생활화 됐습니다. 눈에는 체인지 칼라의 안경이나 썬글라스(시력 보호를 위해 필수적임), 입에서는 마스크 차림새니 신학교나 목사 세계에서 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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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때문에 몇 년씩이나 고생할 때도, 겨울철이면 산책 후에 이가 시려서 울고 싶을 때도 다른 사람들의 지혜에 도움 받은 적이 없습니다. 혼자 생각하고, 혼자 고민하고, 혼자 실천에 옮겨 봤습니다. 이런 해결 방법들은 너무 쉽고 간단한데도 당뇨병환자를 위한 어떤 책에도, TV의 각종건강 프로에서도, 종합병원에서 운영하는 당뇨 클리닉센터에서도 조언을 안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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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간단하게 해결 할 수 있던 것을 3-4년 정도는 진짜 피 흘리며 고생고생한 뒤에야 터득했습니다. 당뇨병환자들 중에는 많은 이들이 아직도 본인과 같은 증세로 고생들을 하고 있습니다. 당뇨병이나 기타의 진행성 만성질환 일수록 책이나 병원에서 가르쳐 주는 이론 위에, 그 환자가 처한 환경이나 본인의 생활태도, 본인의 체질 등을 파악해서 자신이 살아 갈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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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을 오래 앓다 보면 피부가 굉장히 얇아지고 약해집니다. 어느 정도 병력이 붙으면 피부 가려움증도 올 수가 있습니다. 한번 긁으면 피가 나도록 긁고 또 긁고.... 나중에는 병원까지 가게 됩니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치료책으로 연고제 등을 제조해 주는 것이 상식화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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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환자들을 괴롭히는 가려움증은 연고로만 해결 할 수 없습니다. 가려움증의 근본원인은 피부에 와 닿는 자극과 피부의 수분유지가 안 되어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특히 겨울철에 간접 난방이 아니고 히터나 난로를 이용해서 직접난방을 하는 실내에서는 가려운 현상이 더 심해집니다. 실내가 건조해질수록 피부도 건조해지고, 피부도 건조해지면 가려운 증상도 더 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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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에는 가려움증을 해결하는 방안으로 하루 1번 정도는 가볍게 목욕하고, 목욕할 때는 비누 사용은 될 수 있는 되도록 억제하고 있는 중입니다. 목욕 끝에 수건으로 물기를 닦기 전에 오일을 온몸에 골고루 바르고, 심한 건성일 때는 그 위에 약국에서 파는 바셀린을 살짝 바르고 마사지를 하는 습관을 들이면 웬만한 가려움증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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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아토피성 피부질환은 없습니다만 아토피성 피부질환으로 고생하시는 분들도 비슷합니다. 추운 계절 일수록 따듯한 물로 목욕이나 샤워하는 습관은 필수입니다. 다만 목욕이나 샤워 할 때에 비누 사용은 될 수록 피하고 대신 밀가루를 거품기를 사용해서 로션정도의 농도로 만든 뒤에 비누칠 대신 온몸에 칠한 다음, 따듯한 물로 정성 들여 닦아만 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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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속에 놀라울 정도로 세정효과와 영양공급효과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피부가 건성이거나, 공기 중의 습도가 낮아지는 가을이나 겨울철에는 밀가루 반죽 속에 오일을 첨가 하시면 됩니다. 첨가하는 오일의 양은 자신의 피부상태에 맞게 조절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몸에 맞는 자기만의 건강비법을 개발하시기 바랍니다. (샴푸, 린스, 샤워 클리너, 비누, 일체 사용 안 하셔도 피부가 굉장히 매끄럽고, 윤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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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병이나 아토피성으로 피부가 조그만 자극에도 민감한 반응해 고생하는 분들은 피부보호를 위해 ‘최대한 자극 없는 그리고 적당한 수분유지’가 필수이기 때문에 위에 소개한 목욕 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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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런 생활방식들도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풀어 준 자연 속에서 내 자신의 삶을 끈질기게 영위하기 위한 지혜의 일부분” 이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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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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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하캄'을 지혜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 '하캄'은 인간을 우주의 주인으로 만들고, 인간으로 하여금 현존하는 우주의 <질서>와<법칙>을 알아서 거기에 잘 적응하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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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 기자들은 그들의 신에 관한 지식은 늘 세속적인 관심사에 의해서, 인간의 궁극적 관심사에 의해서, 그리고 보편적 경험을 결부 시켜 설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 자신이 밝혀낸 세계 질서는 철두철미 종교적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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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인간에게 그 지으신 세계의 통치를 위임하시고, 인간은 그 받은 과제를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게 감당하며,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다스릴 것을 명령 받았습니다. 이 명령 속에는 ‘다스림과 책임’이라는 상반관계가 내포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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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을 다른 말로 표현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끼리, 인간과 자연을 화해(화목) 시키기 위한 희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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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조 된 인간은 “창조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 현자들의 깨달음이고, 지혜이고, 후손들에게 가르친 교육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비교해 볼 때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인지에 대해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라는 것을 후손들에게 들려주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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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 (잠1;7,9:10)임을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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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는 삶을 한가운데서 번뇌에 몸부림치며, 불안해하고, 도피하고 싶어 하며, 그러면서도 끈질기게 살아야만 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 생의 과제를 부둥켜안고 고민하는 자,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자 - 위하여 야훼 하나님은 역사 안에 들어와 활동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잠언(서)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현자들은 “자기의 생에 대해서 진지하고 진실할 수 없는 자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진지할 수 없고, 진실할 수도 없다”는 삶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를 통하여 소중한 믿음을 일깨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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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90;12 -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인간이 자신을 알아 가는 과정을 ‘지혜’로 본 시편 기자의 말을 가슴깊이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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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언에서 말하는 ‘지혜자로서의 삶’을 우리 모두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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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잠언9;10)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nd knowledge of the Holy One is understanding.” (Proverbs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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