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30, 2006

-신명기 20장을 중심으로 ‘성경에서 언급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소고






2. 최상의 선물



-신명기 20장과 22장에 나오는 ‘자연보호 정신’에 대해서....


-2001년 6월 – 100년 만의 가뭄으로 고생할 때




신명기 20장 19~20절
신명기 20장:19 너희가 어느 성읍을 오래 동안 에워싸고 쳐서 취하려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곳의 나무를 작벌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밭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20 오직 과목이 아닌 줄로 아는 수목은 작벌하여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 찌니라

신명기 22장 6~7절
6 노중에서 나무에나 땅에 있는 새의 보금자리에 새 새끼나 알이 있고 어미 새가 그 새끼나 알을 품은 것을 만나거든 그 어미 새와 새끼를 아울러 취하지 말고 7 어미는 반드이 놓아 줄 것이요 새끼는 취하여도 가하니 그리하면 네가 복을 누리고 장수하리라



** 자연은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인간에게 재해를 가져 다 줍니다.


인간이 자연에 절대적으로 의지하던 농업사회나 유목사회 일수록 인간의 경험은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습니다. 즉 자연이 가져 다 준 혜택과 재해에 대처하는 지혜는 젊은이의 힘과 정열이 아니고 30년 또는 50년, 70년,...주기적으로 되풀이 되는 자연재해를 경험한 노인들이었기 때문에 농업사회는 노인의 지혜가 꼭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노인의 흰머리는 그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필요한 존재요, 지혜의 전수자요, 교사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극심한 자연재해 앞에 놓여있습니다.
더위/추위, 가뭄/홍수, 폭설/우박, 태풍/.....
이 가운데서도 인간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물입니다.
가뭄과/홍수는 인간이 화성을 다녀오고, 우주정거장을 건설해도 여전히 해결 할 능력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62, 65, 69, 78, 88, 94, 2001....
이 숫자들이 우리나라가 가뭄으로 고생했던 년도를 적어 놓은 것입니다.
62, 65, 69, 78, 88, 1994, 2001...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봄과 가을철에는 가뭄으로 물 고생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위의 년도들은 유난히 가뭄이 심했던 해이었습니다. 이중에서 78년 여름은 ―제 기억 속에― 유난히 덥고 가물었었는데, 78년의 가뭄은 70년만의 가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2001년의 가뭄은 이보다 더 한 100년만의 가뭄입니다.


보통 자연은 3, 5, 10, 30, 50, 70, 100,...300, 500, 1000,... 이런 식의 주기를 가지고 재해를 가져옵니다. 자연재해는 되풀이 되는 주기인데도 근본적으로 손 쓸 방법이 없는 게 인간입니다.
정부에서는 가뭄 대비책으로 정부자금으로 관정 개발을 지시하지만 농업용 지하수 개발(관정)도 일시적 해결책입니다. 우리말에 “물 쓰듯 하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가장 흔한 것이 물이라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물이 가장 귀한 존재가 되어갑니다.


미국 남 캘리포니아 농업 산지에서 퍼 올리는 지하수는 50년 만에 이미 고갈이 되어 갑니다.
몇 만 년 동안 고인 지하수를 단 50년 만에, 앞으로 20-30년은 더 쓸 수 있다 하더라도 몇 만 년 동안 고인 물을 100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에 다 써버린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부곡 온천을 아시거나, 다녀오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부곡 하와이’는 80년 초반. 전국의 관광 명소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20년이 지난 2001년에는 부곡의 지하 온천물이 너무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은 온천물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350m, 즉 1000자를 파 들어가야만 온천수를 끌어 올릴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초정리도 비슷합니다. 초정리 물이 좋다고 하니까 너무 나도 덤벼들어서 초정리 광천수 장사를 하는 바람에 지하수맥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보통 지하수맥에서 4cm 끌어 올려 쓴 물은 3㎝가 흘러가고 1㎝정도가 땅속으로 스며든다고 합니다. 그 1㎝도 곧바로 지하수맥으로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하수맥으로 모여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지하수로 될 때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부곡 온천처럼 10년이나 20년 뒤에 온천물이 고갈되면 우리 후손들은 100년 200년 아니고 1000년이나 2000년, 또는 그 후에나 부곡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이 땅에 단군이래의 역사가 4334년 이라면 4300년 훨씬 이전부터 있던 물은 ‘단 30년 만에 끝장나고 말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지구의 자원고갈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다만 고갈의 속도를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고 늦추자는 것뿐입니다.

'야생 동물의 생태'를 보면 일정한 구역에 서식하는 초식 동물들이 처음에는 급격히 그 개체수가 늘어나다가도 어느 정도 늘어나면 신기하게도 그 수를 일정하게 유지합니다. 또 그 초식 동물들을 잡아먹고 사는 육식 동물들도 그 초식 동물의 수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듭니다.

일정한 구역의 땅을 넓혀주면 다시 초식동물이 늘어나고, 육식동물도 따라서 늘어나고, 일정구역의 땅을 좁히면 초식동물이 줄어들고, 육식동물도 줄어들고.... 자연은 이렇게 스스로의 질서를 가지고, 그 질서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렇게 육식동물도, 초식동물도 나무와 풀들까지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신기한 질서 속에서 생태계를 유지하지만 , 그 질서 중 하나가 깨어지면 처음에는 관계가 없는 것 같던 다른 종들도 몇 년 뒤에는 같이 멸종하곤 합니다. 자연의 질서는 서로가 같이 살기 위한 질서입니다.

그런데 인간만이 ‘자연의 질서’라는 규율을 깨고, 그 흐르는 질서 속에 우뚝 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연은 물과 같이 흐릅니다.
그 흐르는 물속에 커다란 돌이 놓인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연 질서의 파괴, 즉 환경오염의 가장 큰 적은(문제점은) 첫째로 '인구과잉'에 있습니다.

'인구과잉'이 가장 큰 문제점인데도 각각의 국가에서는 이 문제를 외면하려고 합니다. 1차 세계 대전 때만 하더라도 세계 인구는 10억이 조금 넘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50억이 넘습니다. 100년 동안 5배가 늘어났습니다.


중국도 모택동 정부가 들어섰던 1930-40년대 중국의 인구는 통계상으로 5억이었습니다. 지금은 12억입니다. 도시에서는 1가구 1자녀, 농*어촌에서만 2명을 허용하는 강력한 인구 억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다음 세대인 30년 뒤에는 16억 인구가 된다고 사회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이런 인구과잉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세계적 문제가 됩니다.

중국은 이미 중국자체의 인구과잉으로 인한 식량 부족과 물 부족을 겪고 있는데 (황사현상도 근본적으로는 물 부족 때문에 일어나는 자연 재해임) 30년 뒤에 16억이 되면 그 때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이중에서 1억만 동남아로 떠나온다면 그들을 어떻게 방치할 것입니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집니다.

남궁 억 선생이 무궁화 묘목 나눠주기를 하던 1920년대 한반도 전체 인구가 2000만 명 정도이고, 해방당시도 3000만 명, 지금은 남북한의 인구를 합치면 7000만 명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선진국들의 ‘저 출산’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고, 우리나라도 ‘저 출산’이 사회적으로 가장 큰문제가 되고 있지만, 지구전체의 ‘인구과잉’ 이라는 문제와 ‘저 출산’이라는 상반된 과제를 한꺼번에 해결 할 방법은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인구는 보통 3-5배가 늘었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무섭게 불어났습니다.


각국의 나라마다 인구가 자원이고, 국력 이라는 말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현재의 상태만은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산입에 거미줄 치랴' '저 먹을 복은 제가 가지고 태어난다.' 는 것도 옛말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들의 인구정책은 성공했지만, 아직도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의 후진국들의 인구는 무섭게 불어나고 있습니다. 물이 순환되고, 공기가 순환되듯이 인간들의 자리이동은 불가피한 현상입니다.

30년 뒤의 인구는 얼마나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한정된 지구, 늘어나는 인구-‘인구정책’은 이미 실패했습니다.


'충만하고 번성하라’는 성경의 기록도 그 시대 상황에 맞는 말이었습니다. 무 시대* 무 상황적인 말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3000년 전 혹은 더 오래 전에는 세계인구가 얼마나 되었을 것 같습니까? 1-2억? 또 이스라엘의 전체인구수는?

조선 초의 우리나라 인구가 600-900만 이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특히 농업이나 유목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족 구성원이 많을수록 유리했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최고 산업 정보시대인 오늘날에 맞출 수는 없는 형편입니다.


자연 질서의 파괴의 둘째는, 지하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항상 있어줄 것만 같던 지하수도, 강물도 너무 많이 써서 고갈이 되어 갑니다.
땅 위의 가뭄은 비가 오면 해결되지만 땅 속의 고갈은 비가와도 해결이 안 됩니다. 보통 지하수맥이 다시 형성되는데 몇 천 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에너지로 제일 많이 쓰는 석유는 몇 천만년? 혹은 그 보다 훨씬 전에 생긴 지하자원 입니다. 아주 짧게는 몇 천 년 길게는 몇 억년이나 몇 천만년 동안 이루어진 지하자원들이 인류역사 1만년, 특히 산업혁명이후의 200년 동안, 더 정확하게는 1950년 이후, 단 5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에 지구가 가지고 있던 자원들을 너무 많이 소비했습니다.
50년, 100년 뒤의 자손들에게 물려줄 것이 없다는 것에 우리 모두가 심각성을 가져야 할 때 입니다.


자연 질서의 파괴 그 셋째는 의, 식, 주, 을 비롯한 인간들의 삶 전반이 자원의 과소비와 오염을 가져오는 생활패턴으로 변한 데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주거 환경이 아파트로 변하고 있습니다.
아파트의 특징은 핵가족 문화와 수세식 변기, 세탁기 사용 등의 주거 문화인데, 그 단점이 물을 굉장히 소비하는데 있습니다.

수세식 변기는 말할 것도 없고, 세탁기만 해도 손빨래를 할 때 보다 물 소비가 큽니다.
30년 전만 해도 겨울철 빨래는 1주일 동안 말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손으로 짠 빨래가 낮 동안에 살짝 말랐다가 저녁이면 다시 얼고.... 이렇게 며칠동안 되풀이 되어야 하던 것이 세탁기가 보급되고, 가정용 난방 보일러가 보급되면서부터 세탁기에 탈수하고, 보일러 설치된 방에 적당히 널어놓으면 아무리 추운 겨울인데도 하루 만에 마릅니다.
세탁기 사용은 물도 많이 허비하지만 빨래 횟수도 옛날에 비해 자주 하게 합니다.

또 주거문제도 옛날의 한옥은 손때가 적당히 묻어야 그 고풍스러움이 은은하게 배어나왔습니다. 창호지의 색도 가을에 새로 할 때보다 2-3달 지나야 은은해지고, 장판도 콩물과 들기름으로 새로 노랗게 들일 때보다도 몇 달이 지나야 색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을 보십시오.

건축물의 유리창은 손자국만 있어도 지저분하게 보이고, 인공장판은 사람 때가 물으면 화학약품으로 닦아내야 하고, 싱크대와 화장실은 초강력 세제를 사용해서 닦아내고, 벽과 문은 수성, 유성, 페인트와 신나를 사용하게 됩니다. 페인트 묻은 깡통과 공사 뒤의 폐품 등도 수질을 오염시킵니다.

이런 식으로 옛날 건축물은 시간이 흐르면 더욱 고풍스럽고 자연스러웠는데, 현대의 건축물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저분해져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화학제품을 사용해서 관리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먹고, 입고, 잠자는 것, 모두가 옛날에 비해 환경오염, 특히 수질오염을 놀랠 정도로 가속 시킨다는데 그 특징이 있습니다. 주부들이 집안 일 할 때에 빠르고, 쉽고, 힘이 덜 든다고 선전되는 제품들 일수록 수질 오염 시키는 데는 큰 공헌을 하는 제품들임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환경오염에 대한 특강의 시간처럼 환경오염에 대해 지금까지 말했습니다.


오늘의 본문 신명기 20장 19-20절, 22장 6-7절은 지구의 환경이 오염되고, 인간이 사는 조건이 열악해질수록 다시 새겨서 응용해야 할 본문입니다.

20장 19‐20절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옛날의 전쟁은 짧으면 3개월, 길으면 3년이나 걸리는 전쟁입니다.
전쟁에 이기고, 성을 빼앗아서 차지하고, 국민들을 이 성에 이주시켜 산다고 하여도, 먹을 게 있어야 견뎌 낼 수가 있습니다.

더구나 그 옛날에는 거의 자급자족 하던 시대입니다. 사람들을 이주 시키고, 밭을 일구고, 곡식을 가꾸는 것은 1-2년 만에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수나무는 보통 첫 열매를 소득 하기 까지 5-6년 걸립니다.(레위기 19:23~25참고) 지금은 개량종이라 하여 3-4년에도 첫 열매를 거두지만, 그 나무가 왕성하게 소출을 내려면 10-20년 뒤에야 가능합니다.

전쟁 중에 과수나무에 도끼 한번 휘두르면 그 대가로 5-6년 동안은 과일은 구경조차도 못하고, 과수나무가 가장 무성하게 자랄 때 까지는 10‐20년이나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염두에 두고 한 말씀 입니다.


현대의 엄청난 규모의 건축물은 보통 3년이면 완성시킵니다. 63빌딩, 대우 빌딩, 종합청사, 미국의 국제 무역센타, 엔지니어 빌딩. 센프린시스코의 금문교 등의 건축물이라도 10년 안에 완공 됩니다.


그러나 나무가 제대로 모양을 갖추고 녹음과 산소를 공급하려면 보통 20-30년 이상은 지나야 제 구실을 합니다.

외국영화에서 볼 수 있는 멋있는 경치나 풍경의 주인공은 건축물이 아니고, 그 건축물을 살려주는 100-200년 이상 되는 성목이 건축물의 배경으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고궁 빼놓고는 100이나 200년 이상 된 정원수가 별로 없기 때문 도시의 경관이 빈약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22장 6‐7절은 모든 생물은 씨를 말리지 말라는 말입니다.

어업에서는 보통 그 어획하는 종류에 따라 그물코의 크기를 정해 줍니다. 어린 치어(새끼고기)까지 잡으면 잠깐 동안은 돈 벌이가 좋아도 10,20년 뒤에는 그 어종은 자취를 감춰서 '너 죽고 나까지 죽는 꼴’ 이 됩니다.

우리나라 어종 중에 '열목어'가 있습니다.

20년 전에는 많이 잡히던 어종인데 어린 치어까지 잡는 바람에 90년 중반부터 5-6년 동안은 거의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금은 인공 부화된 치어를 해마다 방사하고 보호해준 대가로 다시 조금씩 눈에 띈다고 합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오늘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고, 내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할 때, 비로소 인간의 역사를 말할 수 있는 겁니다.

복음과 구원도 마찬가집니다.
어제를 말하고, 오늘을 견디고, 불확실하지만 분명히 다가 올 ‘내일’을 감사해야만 되는 것이 은혜이고, 복음이고, 구원입니다.


정통 기독교는 다미선교회나 시한부 종말론처럼, 성경 어디에도 없는 '휴거'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개인주의적 종말론만을 주장하는데 있습니다.
나 혼자만의 삶, 나 혼자만의 구원에서 조금 더 눈을 뜨면, 우리 모두의 삶, 우리들 속의 주님, 인류의 구원이라는 문제가 다가옵니다. 주님의 희생도 궁극적으로는 이것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우리한테 화목을 가져 다 주었습니다.
이 화목은 인간을 하나님께, 인간과 인간끼리,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합 할 수 있게 한 사건입니다. 화목의 의미를 폭 넓게 받아들일 때만이 내일의 후손들에게 오늘의 떳떳한 삶을 이야기 할 수 있고, 건강한 육체를 물려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숨쉬고 부대끼면서 사는 삶이 건강해야 신앙생활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들에게는 우리까지만 자연의 혜택을 받을 것이 아니고, 후손들에게까지도 자연이 베푸는 혜택들을 누릴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 의무가 숙제로 주어졌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자연을 아끼고, 자연의 질서를 인정할 때, 그 자연에게 혜택을 받는 것도 결국은 인간들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자연을 잃으면, 지구를 잃는다.”는 말과 함께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내일의 후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은 바로 “자연이 살아있는 환경을 물려주는 것” 임을 명심해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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