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28, 2008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14.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신앙의 습관)"
14. “What is Learned in the Cradle is Carried to the Grave
(Habit of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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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April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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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행동이(습관) 자신의 운명을 좌우한다.
- One’s conduct(habit) controls his f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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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장16절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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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 속에는 ‘어릴 때부터 한 행동들이 죽을 때까지도 이어진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수없이 되풀이 되는 이러한 행동들을 우리는 흔히 '습관'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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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데렉'은 일반적인 '길'을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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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데렉'의 상징적 의미로는 인간의 소행이나 생활, 즉 지속적인 행위에 따른 ‘삶의 패턴’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여러 곳에서 '데렉'을 '행위'로 번역되곤 합니다.(대하6:23, 욥4:6, 시37:14, 잠13;6등) 즉 인간이 살아온 길은 오직 그 사람의 행위, 행적에 대한 보고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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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1:31절에 '인간은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그 사람이 살아 온 행적을 가지고 그 사람의 삶을 단정 짓는다는 말이 됩니다. 그가 살아온 길, 그가 살아오면서 취한 행위에 의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판정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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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악인의 길(잠2:22), 어두운 길(잠2:13), 지혜로운 길(잠4:11), 생명의 길(잠6:23), 음녀의 길(잠7:25), 사망의 길(잠14:12), 의로운 길(잠16:31),등에서 '데렉'을 인간의 행위와 연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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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데렉'은 행위를 규정짓고 행위를 형성하는 습관과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렘22:21에 의하면 이스라엘백성은 어려서부터 여호와의 말씀을 준행치 않는 것을 '습관'으로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습관'이란 용어는 '데릭'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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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은 고정된 행동, 즉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인간의 태도를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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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습관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운명을 낳습니다.'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행동을 되풀이 하다 보면 어느새 습관으로 변하고, 그 습관으로 인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 되어진다는 말이 됩니다.
자신을 되돌아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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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의 많은 부분은 이 습관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데릭'은 습관, 행동, 삶의 길, 삶의 방향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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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습관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는 ‘미쉬파트’가 있습니다.
미쉬파트는 판단, 심판, 권리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삼상2:13에서는 엘리 제사장의 불량한 두 아들의 소행을 말할 때 이들의 행동을 '습관'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한 것은 '인간의 습관은 인간 자신의 판단이나 권리에 따른 행위‘임을 의미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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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습관'은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할 자신의 주체적 행동을 말하기도 합니다. 즉 습관이야 말로 남에 의해 행동 되어 지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소신과 주관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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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데릭'이나, '미쉬파트'가 의미하는 '습관'이란 인간이 자신의 의지와 주도 아래 행해지는 ‘지속적이고 반복된 행위’를 가리킨다는데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의 행동을 통하여 그 자신의 미래를 형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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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운명을 형성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인간의 의지와 그 의지를 뒷받침 해주는 되풀이 되는 반복된 행동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흔히 '운명을 개척한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 사람의 습관이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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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누가복음4:16절 예수님이 늘 하시던 행동을–습관-본보기로 해서 우리의 신앙적 습관을 되돌아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평소에 하시던 습관을 배워서 내일을 위한 결단의 시간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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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예수님의 습관을 살펴보면
첫째: 예수님은 안식일에 꼭 성전에 가는 습관을 갖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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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4: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자라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규례’는 정착된 습관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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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교회를 부정하고 예배의 무용론을 주장하는 몇 가지 유형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교회무용론과 예배폐지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지적 하는 대로 오늘날의 교회들은 많은 모순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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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습니까? 히브리서 10:25에 '(그럴수록 너희는)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자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더욱 모이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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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교회무용론을 주장하고 예배를 폐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회칠 한 무덤과 같이 종교적 정신은 다 죽이고 형식만 남아 있는 것을 보시고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 자신은 안식일만 되면 규례를 따라 꼭꼭 회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일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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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어떤 사람들 가운데서는 ‘주일날 교회에 가 보았자 설교도 신통치 않으니 차라리 집에서 성경을 보던지 기독교 방송이나 보는 것이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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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은 교회에 나가는 참뜻을 모르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찾아나가 예배를 드리는 그 행위인 것입니다. 어떤 사람한테 늙은 부모님이 계시는데. 부모님을 찾아뵙는 일이 재미없고 부모님의 잔소리 듣는 것도 싫어서 부모님 찾아뵙는 것을 아예 포기 한다면 어떻게 그 행위를 옳게 보겠습니까? 예수 믿는 자들은 괴로우나 즐거우나 교회에 꼭 나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림으로서 자녀 된 본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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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예수님은 늘 성경 읽는 습관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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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4:16절 '예수님이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읽으려고 하시매'라고 기록 됐습니다.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성경 보는 습관 속에 자라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습관을 좇아 성경을 읽으셨음을 본문은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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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당하셨을 때에 무엇으로 사단을 물리치셨습니까? 평소에 읽은 성경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누가복음4;1-13).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평소에 읽어둔 말씀으로 사단을 이기셨는데, 허물어지기 쉬운 범인들이 성경을 읽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매일 성경 읽는 것을 습관화해서-말씀으로 충만해져서-자신에게 부딪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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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성경은 재미가 없어서 읽지 않는다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몸에 좋은 보약일수록 입에는 쓰다’는 말과 같이 재미있는 내용의 책이 반드시 자신의 삶에 유익한 것이 아님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편1편2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말 성경을 읽기 어려운 사람은 성경을 녹음한 테이프라도 열심히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 속에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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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는 사회' - 이것 때문에 성경은 기록되고, 수많은 예언자들이 자신의 생명과 바꾸면서 싸워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왕국은 성장되어 갑니다.
특히 하나님을 ‘임마누엘’이라고 하였는데-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신령한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와 함께 계십니까?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아 헤매지만 하나님은 바로 이 성경, 즉 말씀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고 계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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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들은 재산 목록 1호가 성경(구약)이라고 합니다. 적에게 땅을 빼앗기고 도망을 갈 때에도 성경만은 꼭 가지고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오늘날 세계를 주름잡는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과학자들, 재벌가들, 예술가들, 전쟁 영웅들 중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높습니다. 바로 이것이 일찍부터 하나님을 섬기며 그 말씀을 받아들여 말씀 속에서 살아온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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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항상 옆에 계신 것을 인식하고 모든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오늘날 이러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산다(선다)‘ 는 것을 다른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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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예수님은 혼자서도 기도하고, 제자들과 기도하며 늘 기도하는 습관 속에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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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22:39절에 '예수께서 나아가사 습관을 쫓아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시매....' 예수님은 평소에 늘 기도하는 습관이 있어서 새벽에 기도하시고 밤을 새워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늘 기도하는 습관 속에서 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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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무엇으로 되느냐? 고 묻는다면, 내가 얼마만큼 헌금을 내느냐! 도 중요하고 몸으로 어떻게 헌신 하느냐! 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가 참석하는 교회와 자기교회의 목사를 위해 기도하는 행위입니다. 또 목사는 교인의 소중함을 알고 교인을 위해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7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라는 말씀 속에도 기도의 소중함을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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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정해 놓고 규칙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될 정도로-기도가 몸에 익을 때까지-기도해야 할 것을 오늘의 본문은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규칙적으로 하는 기도가 몸에 밸 정도가 되면 그와 더불어 생각할 것은 자신이 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의'와 맞는가 하는 ‘기도의 질’입니다(누가복음12;22-32). 처음부터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싫어서 기도를 게을리 하면, 나중에는 기도하는 행동자체가 쑥스러울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의 '의'와 맞는 내용과 더불어 온정신을 집중해 간절하게 하는 기도의 형식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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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기도의 행동을 반복하면 기도의 습관이 만들어지고, 그 습관 속에서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 되고, 경건함이 몸에 익숙해지면 인격이 이루어지고, 마침내는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가 많습니다. 마치 처음에 물을 땅에 부으면 아무렇게나 흘러가는 것 같지만 붓고 또 붓고 또 부으면, 마침내는 홈이 파여서 물이 흘러내리는 길이 만들어지고, 도랑이 되고, 개울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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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행동을 반복하여 그 행동이 자신에게 익숙한 습관이 되게 되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질 때도 그때까지 쌓아온 습관에 의해 올곧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행동의 반복하다 보면 굳세고 인격적인 믿음을 갖추는 것이 이 땅 위에서 성도들이 취할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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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을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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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서양 격언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오늘 하루는 오늘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날 중의 하루입니다. 오늘의 소중함, 오늘의 신중함, 오늘의 감사가 내일로 연결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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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11장1절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자신이 바라고 목표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좋은 습관을 가지고 기도합시다. 오늘의 꿈이 내일은 ‘현실이 되어 오고야 만다.’는 확신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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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있어서 습관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의 습관이 내일의 삶을 바꿀 때가 많습니다.
신앙의 좋은 습관을 가져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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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막 9:23)
Everything is possible for him who believes (Mark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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