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25, 2006

마가복음 10;46~52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무엇이 첫 번째인가?(네 믿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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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0월 – 종교개혁 주간

-마가복음 10;46~52절의 ‘믿음의 선행조건-본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구원의 첫째 조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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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0장46~52절
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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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 31일 교황 레오 10세의 면죄부 판매에 반대하여 그때까지는 수도사에 불과 했던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교 성곽 예배당 정문에 95개조 항의문을 붙였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종교개혁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유럽의 중세 봉건 사회는 권력이 왕에게 집중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세속권력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조각조각 분산되어 서로를 견제하는 상태였습니다. 그 반면에 가톨릭교회는 유럽전역에 통일된 권력 체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조직은 종교적일 뿐 아니라 정치적이기도 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유럽전역에서 지역이나 민족을 초월하여 보편적이며, 초국가, 초 민족적인 통일 체제를 이룩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세력이 최고조에 이를 때에는 전 유럽 영토의 1/4∼1/3이 교회나 수도원의 재산이었습니다. 또 교황은 세속국가의 왕을 임명하거나 승인하는 권한까지도 가지고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농민들한테서 황제, 왕, 영주들이 각종 명목을 붙여서 세금을 빼앗다시피 걷어 가면, 교회는 교회대로 종교세, 십일조 등을 짜내듯이 걷어 들였습니다. 이러한 현황이 교회 밖의 현황이었다면 교회안의 현황도 교회 안의 현황대로 문제점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 예배의 첫 번째 특징은 예배 용어를 라틴어로 인도한데에 그 특징이 있습니다. 일반 교인들은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니고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시대였습니다. 외국어로 인도하는 외국 목사의 설교를 통역 없이 경청하는 자신을 상상해 보시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그리스도는 숭배, 성모는 최고의 숭배라는 예배의식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가톨릭에서는 마리아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와 성인의 이름으로 드리는 기도가 병행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 번째는 선행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생각입니다. 선행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는 말은 '공덕 교리'에서 나왔습니다. 이 교리는 예수와 마리아가 선행을 통해서 이룩한 공덕뿐만이 ‘성인이라고 불리는’ 성자들도 큰 공덕을 가지고 있는데, 이 덕은 선행을 행한 자신을 구원함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교리입니다. (고전 3:10‐15참고)

성자들의 공덕에서 일부를 떼어내어 일반 신자들의 죄를 면제하는데 사용 할 수 있다는 교황의 주장아래 십자군 참전 병사나 자선가들에게 면제부가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9세기에 불신자들과 전쟁에서 죽은 군인들은 죽기 전 참회로 연옥 형을 사면한다는 제도가 생긴 뒤였기에 면죄부 발행은 그 파급 효과가 커져갔습니다. 본래부터 잘못된 면죄부교리는 교황청이 재정적인 부족을 보충 하는데 사용되면서부터는 타락의 길로 치닫기 시작 했습니다.

십자군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도 돈으로 면죄부를 사서 죄의 사면을 얻었고, 로마를 순례하는 자에게 주어지던 면죄부도 돈으로 사고, 나중에는 죽은 자들을 위한 면죄부도 생겨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중세의 가톨릭은 교황청의 막강한 권력 밑에서 '비판이 없는 종교' '우상화 된 하나님' '부적이 되어버린 성경' 등등 기독교 본래의 성격에서 벗어나 부패와 타락으로 치닫게 했습니다.

타락의 예를 몇 개 꼽아보면 (이것은 현재가 아니고 500‐700년 전 과거의 일임)

1) 교황 요한 22세는 각종 세금과 속죄권 판매로 가톨릭교리의 타락을 가속화시킴.

2) 교황 알렉산더 6세는 축첩 제도의 제도화에 반대하는 사보나롤라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화형 시킴.

3) 교형 레오 10세는 사냥과 오락을 즐기는 도박꾼.

4) 각종 성직 매매와 중과세로 교황청 유지.

5) 성직자들의 교육수준이 최저로 떨어지면서 교회는 무지와 무식일변도였음.

당시 교황청의 성당들, 특별히 베드로 성당을 증축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습니다. 그 자금을 위해 사용된 것이 면죄부였습니다.

독일에서는 면죄부 판매를 전담시킨 것이 ‘푸거’ 가문인데 판매된 면죄부 금액의 1/3을 판매업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이런 형편이니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별별 비 신앙적이고 비성경적인 말로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며 면죄부 판매에 열을 올렸습니다.

가령 "자, 여기 면죄부가 왔습니다. 이 한 장이면 당신은 물론 당신 부모의 죄도 사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부모님들이 뜨거운 불 속에서 신음하며 고통스럽게 내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까? ‘얘야 우리는 너를 낳았다, 그리고 힘들게 키웠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뜨거운 불 속에서 신음하는데 너는 편안히 살고 있느냐, 살려다오, 우리를 구해다오, 면죄부를 사서 여기서 벗어나게 해다오’하고 부르짖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당신은 짐승입니까! 부모를 외면하겠습니까?" 이런 식의 판매였으니 그 당시 무지한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시달림과 속임을 당했겠습니까?

신학이 잘못 되면 아무리 감동적인 설교라도 악행만을 조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면죄부를 마치 천국으로 들어가는 통행증으로 착각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악행은 교황의 승인으로 시행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부패의 길로 치닫자 성직자들 가운데서도 시정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만 갔습니다. 영국의 궁정 목사였던 죤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수도 프라하 대학의 총장까지 지낸 쟝 후스, 도미니크 수도원에서 수도하고 후에 프로렌스의 행정관이던 이탈리아의 사보나롤라.... 이외에도 수많은 무명의 개혁자들이 이미 종교개혁 이전부터 '성경만이 신앙의 유일한 표준' 이라고 외치며 이단으로 몰렸습니다.

이단으로 몰려서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시민으로서의 신분도 박탁 당하고, 그리고 마침내는 화형을 당해가면서 까지도 중세의 로마가톨릭과 대항하여 ‘성경의 권위’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95개조 항의문을 비텐베르크 대학교 예배당 정문에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의 항의문은 처음에는 어려운 라틴어로 쓰인 탓에 일반국민들은 읽을 수도 없는 항의문이었지만, 이미 부패 할 만큼 부패한 종교계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루터의 항의문을 일반 국민들도 읽을 수 있는 쉬운 독일말로 번역해서 돌림으로써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마침내 종교개혁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종교전쟁과 흑사병의 창궐은 1세기 동안 유럽인구의 1/3을 앗아갔음. 그 만큼 종교개혁은 피를 부르는 과격한 개혁 운동이었음을 유의 할 것.)

해를 지나감에 따라 독일의 일개 수도사였던 루터의 95개조 항의문에서 시작한 가톨릭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은 전 유럽으로 분파를 나뉘어 가면서 확산되어 갔습니다. 종교 개혁 운동은성경관과 성례전에 대한 이해관에 따라 루터파, 쯔빙글리파, 칼빈파, 영국 개혁파, 재세례파 등 여러 종교분파로 나뉘었지만, 이들 분파와 지도자들이 외친 공통점은

1) 하나님 절대 주권 ( Sola Gratia )

2) 성경의 절대 주권 ( Sola Scriptura )

3) 이신득의 ( Sola Fidei )

4) 만인 제사장 ( Priesthood of All Believers )이었습니다.

지금도 종교개혁의 전통을 이어 받은 개혁파 교회들은 종교 개혁자들이 외친 “하나님 절대 주권, 성경의 절대주권, 이신 득의, 만인 제사장 주의”를 교회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들도 ‘개혁주의를 표방한다?’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 문화인 유교의 정신이 깊숙이 배인 교회 내에서 자리 잡기 힘든 것이 ‘만인 제사장 주의’입니다.(참고 베드로전서 2장5,9절)

고린도전서 12장과 디모데 전. 후서와 디도서 등에 나오는 직분의 '차이'는 사람의 등급에 대한 '차별'이 아니고 교회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질서’의 나열임을 알아야 합니다.'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 입헌주의를 국가들의 헌법 정신의 기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민족과 성차별과 신분의 차별을 인정하고 사제, 왕, 귀족, 자영업자 까지를 자유시민으로 (종교개혁 당시 노예와 자유민은 확실히 구분되었고, 여기서 외친 평등은 자유민에 한한 것임. 영국의 ‘젠틀맨’도 종교개혁보다 늦은 17.18세기 시민 혁명 이후에야 자유 시민에 한해서 주어진 칭호였음. 지난세기들에 거론되었던 ‘자유와 평등’에 대해서는 ‘아미스타드호’를 비디오로 보시면서 참고로 하시기 바랍니다.) 규정 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농민, 노예, 여자에게 까지 확산 되어 오늘날의 평등 개념이 발달 되어 온 것입니다.

성경에도 나오듯이 하나님이 능력이 특별하게 주어진 인물들과 기도의 능력이 일어나는 장소는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누가 용하다' '신통하다' '능력 있다' '효과 본다.' '기도가 잘된다.'등.....샤머니즘이나 정체불명의 암자에서 성행하는 기도와 능력에 관한 지식을 기독교 교회 내에다 갖다 붙이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특별한 능력을 장소에 따라서 선택하는 하나님 보다는, 어느 곳에서나 임재 하시는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시고, 각자의 삶에서 중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으면 그 하나님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사 55;6∼7, 사59;1, 사61:1, 마:23, 막28:20 참고). 즉 자신의 백성 모두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전제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다만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든 이들에게 애통하고 간절한 가운데서 회개하는 마음, 다른 말로 표현하면 ‘믿음만을 요구하신 다’는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알라'는 명령입니다.

그리스도교인이라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되풀이해서 듣는 “...예수님이 십자가위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그리스도인)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났다.”란 말과 앞의 문장을 연결해보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인간이 외형적인 조건으로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인간개개인은 하나님 앞에서 똑같이 평등한 존재로 나아갈 수 있는 귀한 존재들이란 것이 ‘만인 제사장주의’의 근본정신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임을 알게 모르게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수많은 이적과 기적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주는 그리스도 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다.’ (마 16;16, 참고 막 8;27∼30, 눅 9;19‐21)라는 베드로의 고백을 듣게 됩니다.

예수님과, 후에는 제자들이 베푸는 기적가운데는 치유 기사가 유난히 많습니다.

그 만큼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병들고 힘들어도 의원 한번 찾아 갈 형편이 못 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이 힘없고 병든 불구의 사람들이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제자들한테 고침을 받을 때 제일 많이 사용되는 말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혹은 '그에게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지라'입니다.

현대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에 의존하여 병 고침을 받고자 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믿음입니다.

기도 잘 된다고 소문난 기도원도 아니고, 능력 있다는 유명한 목사의 손끝도 아닙니다.
오직 본인의 믿음입니다.

인간이 최선을 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은 많습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최선을 다 한 노력과 기도를 해도 이루지 못하는 일들은 허다하게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과 자비와 선함이 하나님의 자유 함 속에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 분의 능력이 본인에게 와 닿을 기회를 달라는 것이 치유를 위한 본질적인 기도입니다.

오늘의 본문 막 10:46‐52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은 10장 50절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와 오거늘'과 52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여리고를 나가실 때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외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불쌍한 맹인 거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고 “꾸짖어 잠잠하라’고 방해를 합니다. 하지만 48절을 보면 맹인 거지 바디메오는 '더욱 크게 소리 지르며' 도와 달라고 청합니다.

우리도 목표를 세우고 기도할 때 많은 방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할 때 - 기간을 정하고 하다가 - 중도에서 그만 두는 것도 자신에게 부딪친 방해입니다.

맹인 거지를 보십시오!

50절에는 맹인이 가지고 있던 겉옷까지 버리고 (겉옷은 맹인거지에게는 전 재산이며 당시에는 크나 큰 재산이었음) 맹인의 몸으로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것이 맹인이 가지고 있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평생 앞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로 갔습니다.이러한 맹인 바디매오의 행동에 대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셨느니라.' 이었습니다.

이 본문에서는 바디매오에게 일어난 기적 자체보다는 바디메오의 신앙심을 깊이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맹인의 운명에 대한 서술보다는 치병을 위한 최선의 몸짓이 결국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맹인 거지로서만 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것을 운명으로 알았던 바디매오는 ‘오직 다윗의 자손, 나사렛 예수만이 자신을 도울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바디매오가 '다윗의 아들이여 도와주소서!' 하고 외칠 때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는 항상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기도를 방해하는 요소 중에 내적으로는 철학과 이성과 의심과 불신이 자리 잡을 수도 있고, 외적으로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으로 하여금 예수를 가까이 접근 못하게 하는 수도 있습니다. 이런 요소는 늘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가르치신 복음을 온 힘을 다해 믿는 자에게만 예수님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또는 '그를 보니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지니라'고 하시며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믿음이 구원의 첫째 조건이 됩니다.
여기서 구원은 영혼만은 가리키지 않고 육신적으로 절박한 상황에서 풀려남을 말합니다. 눅1;46‐55, 눅4;16‐21, 사61:1‐3을 읽어 보십시오.
영적인 구원을 주장한 것은 훨씬 후대의 성경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속에 여러분 자신이 미치고, 빠져서, 정신 못 차리게 매달려 보십시오.인간세상에서 행해지는 병 고침에는 100% 확답은 없습니다. 가장 우수한 종합병원의 저방과 치료, 환자의 피나는 노력, 식이요법이 병행되어 인체의 소생능력을 중요시 하는 자연치유법, 교회에서 흔히 행해지는 안수기도. 작정기도. 합심기도,...등에도 병 고침을 받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이고 현재의 상황입니다.

예수님 당시 수많은 거지와 맹인 가운데서도 유독 바디매오와 소수의 사람들만이 구원을 체험하였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과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기도함으로써 반드시 본인들의 병이 치유 받는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것을 말해 주려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과 자비와 선함과 자유함 속에 매달릴 때, 혹시나 그 은총이 치유의 역사로 일어날 수 있도록 그 기회를 포착해 보시라는 것입니다.(요한복음5:2‐9참고)그리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응답의 기회를 포착하시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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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장 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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